다정함이 서툰 아빠 – 아이와의 스킨십 이야기
“아빠 안아줘.” 아이의 작은 팔이 내게 다가올 때, 나는 순간 정지한 사람처럼 머뭇거렸다.
분명히 반사적으로 안아줬지만, 그 안아줌이 내가 마음 깊이 느낀 감정에서 나온 행동이었는지는 자신이 없었다.
그 찰나의 멈칫함은 내가 여전히 다정함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증거였다.
🧍♂️ ‘다정’이라는 감정은 낯설다
나는 어릴 때 부모님과 스킨십을 많이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늘 바쁘셨고, 아버지는 말수가 적은 분이었다.
기억나는 한두 번의 포옹조차 ‘기념일’이나 ‘의례적인 인사’처럼 느껴졌다.
그런 나에게 아이와의 스킨십은 처음부터 벽처럼 느껴졌다.
아이에게 다정해야 한다는 건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몸이 따라가지 않았다.
🧒 아이는 몸으로 사랑을 배운다
말보다 먼저 닿는 게 바로 손이다. 아이는 말을 배우기 전에 터치와 접촉을 통해 세상과 사람을 신뢰하는 법을 익힌다.
내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아이의 손길을 피하거나 안아주는 걸 건성으로 할 때마다 나는 아이의 정서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 걱정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걸 잘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 다정함은 노력해야 익숙해지는 감정
나는 감정 표현이 서툴렀다. 연애를 할 때도, 결혼 후에도, 기뻐도 말이 없고 슬퍼도 표정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런 내가 아이를 키우며 가장 큰 벽을 느낀 부분은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안아주기, 뽀뽀해주기, 등을 두드려주기… 사랑 표현의 가장 기본이 나에겐 도전이었다.
📌 서툴러도 괜찮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부터
내가 바뀌기 시작한 건 아이의 반응 덕분이었다.
하루는 퇴근 후 지쳐 소파에 앉아 있을 때, 아이의 작은 손이 내 무릎을 톡톡 두드렸다.
“아빠 힘들어? 내가 안아줄게.”
그 말에 나는 울컥했다.
작은 품이지만 그 안에 내가 기대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이에게 내가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게 아니라, 아이와 나 사이에 다정함이 흐를 수 있게 내 마음의 문을 조금만 더 열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 반복해야 익숙해진다, 몸의 언어도 마찬가지
그래서 나는 작은 루틴을 만들었다.
- 하루에 세 번, 이유 없이 안아주기
- 자기 전 이마에 뽀뽀해주기
- 놀이 중 아이가 웃을 때 등을 가볍게 쓰다듬기
- 아이가 나를 바라보면 눈 마주치며 손잡기
그렇게 며칠, 몇 주, 몇 달을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몸이 먼저 움직이고, 표정이 따라오고, 말이 자연스러워졌다.
💬 “아빠는 왜 안 안아줘?”
한 번은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아빠는 왜 나보다 장난감 더 좋아해?”
“아니야. 아빠는 너 제일 좋아해.”
“그럼 왜 자꾸 핸드폰만 봐?”
그 말에 아무 대답도 못 했다. 그저 미안하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날 이후, 나는 눈 마주칠 때마다 안아주기 시작했다. 식탁에서 앉기 전, 외출 전 신발 신기 전, 자는 방에 들어가기 직전.
안아줄 수 있는 순간은 사실 무한히 많았다.
🧠 다정함은 ‘감정’이 아니라 ‘관계 방식’이다
나는 이제 다정함을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하루를 살아가는 하나의 습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 내가 감정이 좋지 않으니까 스킨십 못하겠어’가 아니라, ‘내 감정과 상관없이 아이의 마음은 늘 안아줘야 한다’는 원칙.
그 기준을 세우고 나니 스스로에 대한 스트레스도 줄어들었다.
🌙 마무리하며 – 어색해도 괜찮다, 아이는 기다려준다
나는 지금도 완벽한 다정한 아빠는 아니다. 아이를 꼭 안아주는 순간에도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가 있다.
하지만 아이는 그 안아줌 속에서 내 마음을 먼저 느낀다.
서툴러도 괜찮다. 어색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아이에게 다가가겠다는 마음이다.
사랑은 마음속에만 두는 게 아니다. 가볍게 안고, 따뜻하게 토닥이는 그 손끝에서 사랑은 자란다.
▶ 다음 이야기: 29 – 아빠도 감정이 있다 – 분노 아닌 표현을 배우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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