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 아내와의 거리 – 육아가 만든 침묵

아내와의 거리 – 육아가 만든 침묵

같은 집에 살고, 같은 아이를 키우고, 같은 하루를 반복하고 있는데…

어느 날 문득,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도 멀어져 있었다.

🔇 대화가 줄어든다는 건, 감정이 닫히고 있다는 뜻

처음에는 피곤해서 말을 못 하는 줄 알았다.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하고, 틈틈이 일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숨 돌릴 틈 없이 하루를 버티다 보면 말을 걸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피곤해서”가 아니라 “어색해서” 말이 줄었다는 걸 깨달았다.

밥 먹을 때도, 잠자기 전에도,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핸드폰만 바라보게 되는 시간.

나는 그 침묵이 이젠 너무 익숙해졌다.

🧱 쌓인 감정은 설명되지 않고, 오해만 남는다

아내가 무표정으로 집안일을 할 때,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나한테 화났나?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가?” “말이라도 좀 해주지…”

아내도 같은 생각을 할지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 서로 말은 하지 않고, 속으로만 짐작하고, 그 짐작이 오해가 되어 점점 멀어진다.

육아는 우리가 감정을 표현할 여유를 앗아간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거리감은 말이 아닌 ‘침묵’으로 유지된다.

😶 부부가 ‘같이 있는데도 외로운’ 순간

같은 공간에 있는데, 대화가 없다. 같이 TV를 틀어놓고 앉아있지만, 서로의 표정엔 아무 감정도 없다.

한때는 별것도 아닌 얘기에 웃고,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던 사이였다. 지금은 그저 육아 동료, 집안 파트너처럼 느껴진다.

말을 걸자니 어색하고, 장난을 치자니 분위기가 무겁다.

그래서 그냥, 오늘도 아무 말 없이 하루를 마무리한다.

🧠 대화가 줄어든 건 서로가 무뎌졌기 때문일까?

한밤중, 조용한 거실에서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정말 피곤해서 아내와 말을 안 한 걸까?” “아니면… 말 걸 용기를 잃은 걸까?”

사실, 내 마음속엔 언제나 “말을 걸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거절당할까 봐, 어색할까 봐, 그 마음을 눌러두고 있었다.

🧨 사소한 일이 감정의 뇌관이 될 때

“애 좀 봐줘.” “나도 좀 쉴 수는 없나?” “맨날 나만 애 보는 것 같아.”

이런 말들이 예전엔 대화였지만, 지금은 감정을 담은 공격이 된다.

아내의 말투가 날카로워지면, 나도 그에 맞춰 뾰족해진다.

그렇게 대화는 감정의 벽을 쌓고,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싸우게 된다.

🌧️ 각자의 방, 각자의 핸드폰, 그리고 각자의 감정

잠자리도 따로 누워 자게 되는 날이 늘었다. 아이는 아내가 재우고, 나는 거실에서 조용히 있다가 뒤늦게 방으로 들어간다.

같은 집, 같은 부부인데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생각만 하고 있다.

이게 더 편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마음 한쪽은 계속 허전하다.

💬 다시 말을 꺼낸 어느 날

아내와 아이가 잠든 밤,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다가가 말했다.

“우리 요즘… 말이 너무 없었던 것 같아.” “내가 신경 쓰지 못했던 것 같아서 미안해.”

아내는 한참을 말이 없다가 작게 대답했다.

“나도 요즘… 좀 많이 힘들었어.”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마음이 울컥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서운한 것도, 고마운 것도 많았지만 아무도 먼저 말하지 못했다.

📌 다시 가까워지기 위한 작은 시도들

• 1. ‘오늘 어땠어?’ 대신 ‘오늘 뭐가 제일 힘들었어?’
  감정이 담긴 질문이 대화를 열어준다.
• 2. 사소한 고마움 표현하기
  “설거지해줘서 고마워”처럼 작은 고마움을 언어로 표현
• 3. 함께 있는 시간에 핸드폰 내려놓기
  시선과 눈맞춤이 감정 연결의 첫걸음
• 4. 감정 단어를 직접 말하기
  “오늘 좀 외로웠어.” “지금 서운해.” 등 솔직한 표현
• 5. 잠들기 전 3분 대화
  매일 밤 짧게라도 감정을 나누는 루틴 만들기

🌿 아이만큼, 우리 사이도 챙겨야 한다

육아는 매일 새로운 상황을 만들지만, 그 속에서 부부 사이의 감정은 쉽게 잊힌다.

아이의 기저귀, 식사, 수면은 챙기지만 서로의 감정 상태는 “나중에 얘기하자”라며 미뤄둔다.

그게 반복되면 마음은 더 멀어진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아이를 챙기듯 우리 사이도 다시 돌보려 한다.

🌙 마무리하며 – 대화 없는 사이에 사랑은 메마른다

사랑은 식어서 사라지는 게 아니다. 말하지 않아서, 표현하지 않아서, 침묵이 일상이 되면서 사라지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아직 사랑한다. 다만 서로의 감정을 돌볼 여유를 잃었을 뿐이다.

오늘이라도 잠시 멈춰서, 짧게 말 걸어보자.

“우리… 요즘 서로한테 너무 조용한 것 같아. 내가 많이 미안해.”

그 말 한마디가 다시 ‘부부’라는 감정을 우리 둘 사이에 되살릴 수 있다.

▶ 다음 이야기: 27 – 배우자의 변화가 낯설게 느껴질 때